법도 시퍼렇던 마을에 할머니들 바람 났다

김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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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실마을 입구.

개실마을 입구.

[마을을 찾아서] 김종직 후손 집성촌 고령 개실마을
남자에 숨 죽여 살다가 체험 마을 이끌며 ‘개명’
양반집 며느리 일솜씨로 전통 고스란히 재활용
“하이고마, 마을 법도가 얼매나 시퍼렇던지 여자들은 고마 밖에 나다니지도 몬했으예.” “남자들 다가오모 외면하고 말도 몬하고 그래 살았다니께네.”
조선시대 얘기가 아니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개실(개화실·가실)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로, 영남사림파의 종조인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선산(일선) 김씨 집성촌이다. ‘불천위 제사’(신위를 영구히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제사)를 지내는 종가마을답게 법도가 매우 엄격했고 자부심도 대단했다.
김숙자(70)씨가 말했다. “젊었을 땐 장보러도 몬가고 다 어른들이 사다 주는 걸 받아 썼지예. 차암 보수적이라예. 여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카이.”

제 세상 만난 듯, 억눌렸던 한을 풀 듯 난리법석

개실마을 한과 만들기.

개실마을 한과 만들기.

이랬던 마을에 몇 년 전 변화의 회오리가 몰아닥쳤다. 갑자기 동네 할머니들이 마을을 주름잡고 나다니기 시작했다. “제 세상 만난 듯이”, “억눌렸던 한을 풀듯이” 신이 나서 웃고 떠들고 몰려다니며, 행사를 한다 손님을 맞는다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마을 할머니들이 행사운영 주체로 나선 것이다.
이추자(69)씨가 세상 살 만해졌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풍물 배운다캐쌌고 종일 쿵쾅거리며 돌아댕기니까네, 어르신들이 고마 눈꼴 시어갖고 같잖다는 표정으로 헛기침 해쌓고 외면하데예. 호호.” 그러자 한 할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무신 소리고. 요즘도 그 양반이 고함 함 질러뿌모 온 마을이 다 조용해진다카이. 그 호랭이 양반이 우리 마을 대통령이라예.” 점필재 선생의 17대 종손으로 꼿꼿하게 종택을 지키고 있는 김병식(76)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할머니들의 적응 속도는 매우 빨랐다. 방문객들이 오면 맛깔스런 사투리와 입담으로 웃으며 맞이했다. 힘든 일도 서로 미루지 않고 앞 다퉈 나서서 해치우며 행사를 이끌었다. 이 바탕엔 ‘법도 있는 양반 집안’의 일가친척 며느리들로서 갈고 닦아 온 일솜씨와 음식솜씨, 예절과 참을성이 녹아 있다. 한과 만들기나 엿 만들기 등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온 전통방식을 고스란히 되살려 활용한다.
늘 웃는 표정의 이추자씨가 말했다. “한과라 카는기 억수로 손 마이 가는 음식이라예. 찹쌀 뿔가가 열흘 발효시키고 갈아 반죽해 막걸리 여가가 찌고 치대가가 방맹이로 밀어 바탕 만들어가가 밤새 말려가 튀가내고 조청 발라가가 쌀튀기 묻히가 맹길어예.” 늘 부끄러워하는 표정의 김숙자씨도 말했다. “하이고마 엿은 또 어떻노. 손님들이야 엿 켜기(당겨서 꼬아 뭉치는 일)만 딱 떼가가 체험하니까네 재미있다 카지만, 이걸 준비할라카마 메칠을 새와야한다카이.”
전통음식 만들기 말고도 개실마을에선 대나무물총만들기·압화만들기·뗏목타기·짚풀공예·딸기수확 체험 등을 준비해 도시민들을 맞이한다.

엄숙하던 어르신들도 하나 둘 참여 옛 틀 벗고 ‘개방’

직접 만든 전통 엿을 보여주는 개실마을 할머니들.

직접 만든 전통 엿을 보여주는 개실마을 할머니들.

‘개명한’ 할머니들이 주축이 돼 2002년부터 시작한 농촌체험행사엔 이제 엄숙하기만 했던 어르신들도 자연스럽게 참가한다. 함께 회의를 하고 운영방안을 짜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대나무물총 만들기엔 경로회관 어르신들이 전원 동원돼 나무를 준비하고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체험을 진행한다. 60여가구 100여명 중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제외한 30여가구가 운영에 참가한다.
마을 운영위원장 김병만(66)씨는 “완고했던 양반마을이 자연스럽게 옛 틀을 벗어던지고 개방된 셈”이라며 “노인들만 남은 마을이지만, 수백년 쌓아온 전통문화를 활용해 자랑할 만한 농촌체험마을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친절도·시설·수익성·친환경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농림부 주관 ‘농촌마을 가꾸기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개실마을은 장수마을이기도 하다. 100여명 주민 가운데 90살 이상 어르신이 5명, 80살 이상은 20명이 넘는다. “제일 꼬바리서 네 번째로 젊다”는 운영위원장 김씨가 말했다. “앞으로 농작물 수익을 뺀 순수 체험행사로만 개인별 1천만 원 수익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노인층이 하는 일로 이만큼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도 드물 겁니다.”
개실마을은 1650년께 김종직의 5대손이 들어와 정착하며 집성촌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성종 때 도승지와 형조판서 등을 지낸 김종직은 영남학파의 종조로, 정여창·김굉필·김일손·남효온 등 쟁쟁한 학자들을 길러낸 인물이다. 사후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부관참시의 수모를 겪은 뒤 중종 때 이르러 복권이 됐다.

개실마을 대통령’ 종손은 ‘걸어 다니는 박물관’

개실마을의 체험용 맷돌.

개실마을의 체험용 맷돌.

350년 전통을 지닌 마을인 만큼 개실마을엔 이야깃거리도 많다. 마을 안에 조상을 모시는 재실이 다섯 개나 되고 열녀·효자비도 즐비하다. 마을 뒷산엔 대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그 위로 노송숲이 울창하다. 산 밑으로 놓인 고풍스런 한옥이 종택이다. 안채는 1800년 무렵, 사랑채는 1812년에 건립됐다.
이추자씨와 김숙자씨가 이 마을에서만 만든다는 ‘잼 고추장’과 시루떡을 앞에 놓고 이씨 집 대청마루에 앉아 마을 자랑을 펼쳤다.
“이 잼 고추장이라카는 거는 우리 마을밖에 없는 기라예. 조청에다 딸기 옇고, 고춧가리 옇고 해서 오년 전에 개발했지예. 잡사 보소.”
“우리 마을서는 5대 효자가 났으예. 저 우로 잉어빼미라카는 못이 있는데, 한겨울에 병든 모친이 잉어 묵고 싶다 캐가 못가에 앉아 울고 앉아 있는데 잉어가 꽝꽝 언 얼음을 깨고 제절로 튀어나왔다 안캅니꺼.”
“전국에서 멫 안된다카는, 나라가 내린 불천위 종가마을이라예. 호랭이 그 양반 있지예? 참말로 무서분 분이라예. 얼매나 성품이 깐깐한지 무신 마을 일이 있으모 그 분 거치지 않으모 절대 안되는기라예.”
‘개실마을 대통령’ 김병식씨는 집안 내력뿐 아니라 주요 성씨 족보까지 두루 꿰고 유림의 일에 정통해 ‘걸어 다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주민들의 대소사를 챙기며 마을의 구심점 구실을 하는 분이다. “마을 중심을 딱 잡아가가 누구한티도 절대 굽히는 일이 없다카지예.”
불천위 제사란 돌아가신 분의 덕이 높거나 공이 커서, 자손들이 그 신위를 영구하게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제사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제사는 4대(고조) 조상까지 모시는데 반해, 영구적인 제사를 보장받는 것이어서 이를 허락받은 집안은 큰 자랑거리로 여긴다. 불천위 제사엔 임금이 내리는 것과 유림에서 허락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개실마을 선산김씨 종택 사랑채 안쪽에서 대문쪽을 내다본 모습.

개실마을 선산김씨 종택 사랑채 안쪽에서 대문쪽을 내다본 모습.

“깔린 기 이파리 다섯개 여섯개 달린 토끼풀” 네 잎 크로바는 ‘찬밥’
이추자씨가 ‘신기한 일’이 있다며 자랑했다. “네 잎 크로바가 행운이라카지예? 우린 그런 건 취급도 안해뿌리예. 개실각(체험장) 앞에 가모 깔린 기 이파리 다섯개 여섯개 달린 토끼풀이라예.”
김숙자씨도 거들었다. “다섯개짜리는 우리 집 앞에도 억수로 많다 그쟈.” 이씨가 한발 더 나아갔다. “우리 마을 해설사 양반은 아홉개짜리도 봤다카드라. 대여섯개짜리는 한 삼백개나 땄다카디만. 그걸 다 뭐에 쓰노 카니, 다 나놔줬으예 카데.”
개실마을 입구엔 일본·베트남·오스트리아·체코·프랑스 등 5개 국어와 한국어 인사말을 함께 적은 팻말이 있다. 지난해 8월 각국 교사·학생들로 이뤄진 봉사단이 왔을 때 직접 만들어 세우고 간 것이다.
“메칠 밤낮으로 풍물 갈차주고 놀고 하니 원더풀 캐쌓고 억수로 재밌다카데예. 그카드니 즈그들이 직접 맨들어가 다 새기놓고 갔어예. 헤질 때 섭섭다캐쌌고 울고불고 난리났으예.”
농촌 어르신들이 정성을 다해 운영하는 체험마을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따뜻한 성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개실마을 농촌체험>
체험비용은 한과체험·엿체험·인절미체험 등이 5천원, 짚풀공예(달걀꾸러미 만들기 등)와 대나무딱총만들기 등은 3천원이다. 뗏목타기 체험은 무료. 화장실이 딸린 황토방 숙박 1가족 5만원. 식사는 한 끼에 5천원. 개실마을 운영위원회 사무장 이경태씨 010-3826-7221.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갈 때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직진한다. 김천, 성주 거쳐 동고령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거창 쪽으로 가다 고령 나들목에서 나간다.

고령/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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